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 지기 전까지 중국은 백여 년간 유럽과 일본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되는
치욕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 중국이 가장 치욕적으로 생각하는 아편전쟁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아편전쟁은 약 200년 전의 역사로 거슬로 올라간다.
18세기 말 당시 청나라인 중국은 차문화의 발달로 유럽에 각종 차를 팔았다.
그때만 해도 영국의 상류층들이 차를 즐겨먹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대량의 차를 수입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와 함께 도자기까지 수입하고 있었다.
이때 중국의 도자기 기술은 세계 최고였고 유럽에서는 중국의 도자기를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겼다.
'본차이나'의 유행이 이때부터...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는 대신 중국에 은과 시계를 팔고 있었다.
당시 차는 대량으로 수입고 수출은 워낙 적은 양이 되다 보니 영국은 엄청난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주 무서운 방법을 선택하는데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인도가 아편을 재배하고 중국에다가 팔기 시작한 것.
중국은 차를 수출해서 받은 은으로 아편 값을 치렀고... 영국은 인도에 의류를 수출하여 은을 다시 회수...
이렇게 차 거의 무상으로 수입하면서 인도 중국과 삼각무역을 시작하여
영국은 앉아서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된다.
아편은 양귀비 꽃에서 생산되는데 지금까지 모든 마약류는 바로 이 양귀비에서 만들어진다.
영국 상인들은 육체노동으로 지친 중국의 하층민을 상대로 이 아편을 팔기 시작
모든 마약류가 그렇듯 한번 아편에 맛들이기 시작한 사람은 아편을 계속 사기 시작했고.
'아편굴'이라고 불리는 비밀장소에서 아편을 피우거나 주사를 맞은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중국 인구의 1/4이 아편중독이었다니 얼마나 대중적으로 퍼졌는지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부패와 국가기강 해이, 경제파탄 , 재정능력 파탄 등의 문제를 얻게 되었다.
중국은 아편의 수입 대금을 은으로 결제하면서 점점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자 중국도 반격에 나선다.
그래서 임칙서라는 중국의 정치가가 왕의 칙령을 받아 외국인 상점을 봉쇄하는 압박을 가한다.
임칙서는 아편을 규제하기 시작하고 외국 상인들의 아편을 모조리 바다에 버려 녹여버린다.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아편상들은 결국 홍콩을 철수한다.
영국은 자신들의 돈벌이가 막히자 영국 내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전쟁을 일으키자는 전쟁파와 그래도 영국의 명예를 지키자는 반대파로 나뉜다.
결국 의회에서 투표까지 진행되며... 전쟁을 일으키자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영국 참 나쁘다...;;;; 마약을 팔고 그것이 막히자 전쟁까지 일으키다니...
1840년 영국은 중국을 침략한다.
이것이 제1차 아편전쟁...
사실 전쟁이랄 것도 없이 중국은 영국에 비해 전쟁할 능력도 무기도 없었다.
거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결국 중국은 영국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게 되는데..
항구를 개항하여 영국의 물건을 더 팔게 해 줬고 외국 무역 독점 상인을 없애면서
중국에게 물건을 팔 때 세금까지 면제해준다.
이것이 바로 '난징조약'
이때 홍콩을 영국에게 빼앗긴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고 영국은 중국에 더 많은 물건을 팔고자 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급자족이 일상화되어있기 때문에 영국의 면제품이나 다른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국은 아무리 애를 써도 중국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자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영국산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새로운 거리를 찾고 있을 때
한 가지 사건이 터진다.
중국에 들어온 영국의 함선 '애로호'가 중국의 검열을 받던 중 싸움이 발발했고.
중국인 공무원이 싸우던 중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잭을 훼손한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애로호'에 영국 국기가 없었다고 했지만.
영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다.
때마침 중국 본토에서 프랑스 선교사가 순교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프랑스와 영국은 손을 잡고.. 러시아와 미국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한다.
다들 본심은 중국을 점령해 먹을 것 찾기 위함이었을 것...
영국과 프랑스 군은 당시 중국 무역의 중심지였던 광저우를 점령하고 민간인까지 학살
그리고 수도 베이징의 관문이 텐진까지 진격... 중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텐진 조약'을 맺게 된다.
영국이 그토록 원했던 무역확대를 위한 추가 개항에 서명했고
그동안 전쟁에 대한 피해금까지 요구했다.
텐진 조약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관은 베이징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상주할 수 없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외교관 보호를 위해
군대가 베이징에 상주하도록 중국에 강요한다.
중국은 자신들의 수도에 외국군대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 이천 여명을 파병한다.
중국도 자신들의 수도에 외국군대가 머무는 것은 반대해 영국과 프랑스 군대에게 포격을 한다.
이번에는 텐진을 넘어 베이징의 코앞까지 영프 군대가 밀고 들어와...
중국은 다시 한번 교섭을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영국과 프랑스 군이 인류사에 남을 만행을 저지른다.
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원명원'
이곳은 건륭제가 유럽과 중국의 미학을 집대성하여 이루어 놓았던 것인데.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 무참히 파괴된다.
또한 그들은 점령지에서 약탈, 강간, 살육을 자행했고 야만인의 행동이라고 칭했던 일들을
그들이 자행했다.
당시 중국의 황제였던 함풍제는 결국 베이징에서 피 산하였고,
형제 중 한 명인 공친왕을 시켜 연합군과 협상을 시작하게 하였다.
결국 공친왕과 연합국은 협상에 의하여 전쟁은 종결되었고 러시아의 중재하에 베이징 조약이 체결
베이징조약으로 아편무역이 합법화되고 기독교의 포교가 허용된다
중국은 이때 비로소 자신의 나라가 더 이상 대국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중국은 서구의 기술을 배우자는 양무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아편전쟁은 영국에게는 신사의 나라가 아닌 것을...
중국에게는 현재 중국이 마약 범죄를 왜 엄하게 처벌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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